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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2024.02.14 22:55 입력
우리 국민은 4·19혁명,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이룩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2016년 평화적인 촛불 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을 한층 고조시켰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전국민적 기억과 자긍심은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검찰독재와 주종적 지배(또는 예속)를 강화하려는 반공화주의적 시도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근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공화주의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사회계약론과 자연권 사상 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담론에 비해 공화주의, 공화정에 대한 담론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주지하다시피 공화정은 고대 로마에서 출현했다. 공화국(정)을 뜻하는 레스 푸불리카(Res Puplica)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적 공간으로 국가는 구성원 모두를 위한, 구성원 모두의 자산이다. 로마가 제정으로 이행한 후에 약 1500년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공화주의의 전통은 14세기와 16세기 초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다시 나타났다. 상업도시로의 발전을 배경으로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에서 귀족들과 상인들이 자치조직을 결성하여 자치도시를 만들었다. 이들 공화정은 대체로 부유하고 힘센 가문들에 의해 통치되는 과두정이었지만 각급 공회(의회)에 기반을 둔 대의제 정부였고 공회는 전체로서 인민 또는 도시를 대표했다. 16세기에 이들 도시 공화정은 군주국들과 외국의 침입으로 붕괴되었고 공화주의는 다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듯이 보였다. 그러나 18세기 정치사 및 지성사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입헌적 정치체제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공화주의는 다시 등장했다.
공화국은 법과 공공선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를 말한다. 즉 레스 푸불리카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의 지배'이고 법 앞에서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다.
공화주의적 정치적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보다 훨씬 엄격하다.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방해나 간섭이 없는 상태라면 공화주의에서 자유는 주종적 지배(또는 예속)가 없는 상태라는 조건이 추가된다. 루소는 공화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유로운 인민은 복종을 하지만 예종하지는 않으며,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게 예종하도록 강제될 수는 없는데, 이것은 법의 힘 때문이다"
공화주의적 평등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평등만으로 이루어져 있진 않다. 그것은 모든 시민들에게 존엄과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조건들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다. 첫째 어느 시민도 가난을 이유로 공적인 명예로부터 배제되거나 오명을 얻게 해서는 안된다.(마키아벨리) 둘째, 공화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서는 안되며, 어느 누구도 다른 시민이 굴종하도록 그의 자유를 사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루소) 첫 번째 원칙은 공화국은 시민들이 가난 때문에 배제된다는 수치스런 경험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국은 명예로운 공직이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가장 부유한 자나 특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우수한 자가 승리하도록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공화국이 모든 사람에게 최악의 경우에도 생존을 위해 일할 권리와 기타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공화국은 시민들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려 함께 노력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따라서 공화국은 동정 행위로서가 아니라 시민이 가진 당연한 권리에 따라 그러한 구호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사회는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애국심과 동양의 도덕주의적 정치 윤리는 공화주의와 매우 친화적인 전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지나친 정치의 도덕주의적 태도와 가치를 강화하여 정치혐오나 무관심을 낳는 부정적 영향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는 하나의 정치질서이며, 생활방식이고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올바른 시민윤리로 공화주의적 자유와 평등을 확대·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맹진영 前 의원
(제9대 서울시의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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