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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밥상에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자율이다
2026.09.01 11:58 입력
유미정 원장
(청계포레어린이집)
최근 보육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지원하는 인지발달 솔루션뿐만 아니라, 아동의 행동을 분석해 신체활동과 또래와의 상호작용, 놀이 선호도 등을 파악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영유아의 급식 데이터를 분석해 식습관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까지 - 이제 돌봄은 단순한 보살핌의 단계를 넘어 데이터와 기술을 접목해 영유아의 성장과 안전을 좀 더 세심하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보육 현장에 몸담은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세상의 변화 앞에서, 보육 현장의 수장으로서 교육 트렌드의 변화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이 흐름을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어린이집 '밥' 이야기가 있다. 알림장을 통해 그날그날의 배식 사진이 부모에게 전달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많이 먹었는지"가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먹었는지", 즉 식재료의 질과 영양의 균형,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식사 과정에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이 핵심이 된 듯하다. 그래서 현장은 더더욱 급식의 질을 채우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다. 우리 어린이집이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와 무항생제 한우 등과 같은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는 작은 원칙들을 지켜나가고, 즐겁고 재미있는 식사시간을 운영하기 위해 AI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의 작은 노력들을 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생활 지도의 제1원칙은 결코 '억지로 먹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거부할 때 설득하고 자꾸 억지로 먹이려는 의지를 갖게 되면 아이는 그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만 깊어질 뿐이다. 얼마 전 점심시간, 먼저 그릇을 비운 아이가 아직 먹고 있는 친구 옆으로 다가가 "왜 안 먹어? 우리 같이 조금 더 먹어보자"며 스스로 말을 건네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어른이 옆에서 재촉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그릇 비우기를 하나의 놀이처럼 만들어내는 모습은 종종 목격하게 된다.
식사 시간은 훈육과 통제의 시간이 아니라, 맛보고 스스로 그릇을 비워내며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배움의 시간이라는 걸 이런 순간마다 새삼 확인한다.
한편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영양 섭취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으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원길에 나누는 "오늘 밥 잘 먹었어요"라는 한마디만으로는 가정과 원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식생활 지도를 완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원에서는 교사들에게 늘 당부한다.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를 부모에게 전할 때는 "잘 먹어요" 같은 막연한 말보다 "오늘 점심엔 고기를 잘 먹었는데 채소는 조금 덜 먹었더라"처럼 구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부모가 매번 캐물어야 안심하는 관계가 아니라, 교사가 먼저 오늘 하루를 구체적으로 들려주는 관계가 되어야 진짜 신뢰가 쌓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할 때조차, 그것을 "오늘 이거 안 먹었어요"라는 지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원의 오랜 규칙이다. 그 정보는 아이를 다그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에서 부족한 영양을 비슷한 식재료로 자연스럽게 채워주기 위한 참고일 뿐이다. 이 원칙은 매년 2월 오리엔테이션마다 교사와 부모 모두에게 반복해서 설명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관찰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도구들이 보육 현장 곳곳에 소개되고 있는데, 그 역할도 딱 여기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미 스스로 해낸 것을 눈높이에 맞춰 확인시켜 줄 뿐, 무엇을 얼마나 먹으라 지시하는 순간 그 도구는 또 다른 형태의 강요가 되어버린다.
그 어떤 기술이나 장치도 교사의 따뜻한 눈맞춤과 발달 단계에 맞춘 세심한 배려를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신체 조작이 미숙하고 낮잠 일과와 맞물려 있는 만 2세 이하 영아에게는 서두르지 않는 동선과 충분한 적응 기간이 먼저다. 결국 좋은 도구든 좋은 말이든, 그것이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를 계속 되짚어야 한다.
아이에게는 억압 없는 식사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교사에게는 밥상 앞 실랑이 대신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대화할 여유를.
학부모에게는 막연한 불안 대신 투명한 신뢰를.
혁신 기술도 아이를 자율의 주체로 바라보는 원칙을 현장에서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밥 잘 먹었냐는 물음에 우리가 정말 답해야 할 것은 얼마나 먹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오늘도 스스로 잘 해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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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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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모운
09.0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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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참여와 성취감, 기억하겠습니다~
권혁준
09.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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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기사 감사합니다~
박은희
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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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고문 잘 읽고 갑니다.. 유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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